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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 과학

마라톤 정신력은 훈련될까 — "더는 못 뛰겠다"의 정체

트랙에서 두 번째 반복을 시작하자마자 더는 못 하겠다는 마음이 먼저 올라온 날이 있었습니다. 다섯 개나 남아 있던 자리라 다리가 비었을 리는 없습니다. 그럼 그때 접힌 쪽은 무엇이었을까요. 실험실에서 재고 건드려 온 변수가 하나 있습니다. 지각된 노력입니다.

글쓴이
정진영 대표원장 · 통증의학 전문의 · 직접 달리는 의사
주제
지각된 노력과 셀프토크로 본 러닝 정신력의 근거와 한계
발행일
2026년 9월 2일

"더는 못 뛰겠다"는 그 순간, 다리는 비어 있을까요

탈진해서 멈춘 직후에 잰 근육의 힘은, 방금 유지하지 못하겠다던 강도의 세 배였습니다.

훈련된 남성 열 명에게 242W로 더 버틸 수 없을 때까지 페달을 밟게 한 실험이 있습니다. 그만하겠다고 손을 든 자리에서 곧바로 5초 전력 스프린트를 시켰더니 731W가 나왔습니다 [1]. 지치기는 했습니다. 쉬는 상태에서 재면 1,075W까지 나오던 사람들이니 최대 파워는 3분의 1쯤 깎인 셈입니다 [1]. 그래도 남은 731W는 과제가 요구하던 242W를 한참 웃돕니다.

세 개의 막대그래프. 쉬는 상태 최대 파워 1,075W, 탈진 직후 최대 파워 731W, 탈진할 때까지 유지하던 강도 242W

탈진 직후 낸 힘은 유지하려던 강도의 세 배였습니다. 힘이 남아 있었다는 이야기이며, 그 페이스로 세 배를 더 갈 수 있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Marcora와 Staiano(2010)의 수치로 직접 작성한 그래프입니다.

근육이 다 비어서 멈춘 것이라면 나올 수 없는 숫자죠. 연구진의 해석은 이렇습니다. 지구력의 한계는 근육이 물리적으로 비는 지점에 있지 않고, 힘듦의 감각이 본인이 감당하겠다고 정해 둔 최대치에 닿는 지점에 있다는 것 [1].

정신력이라는 말은 동기와 자신감과 감정 조절까지 넓게 걸칩니다. 그중 실험실이 실제로 재고 건드려 온 조각은 이 "얼마나 힘든가"의 감각입니다. **지각된 노력(RPE, rating of perceived exertion)**이라고 부릅니다. 타고나는 근성과는 성격이 다른, 측정되고 훈련되는 변수입니다.

머리가 지치면 다리도 느려질까요

운동 전에 머리를 지치게 해 두면 지구력 기록이 떨어집니다.

지루한 인지 과제로 참가자를 정신적으로 피로하게 만든 뒤 운동을 시킨 연구들이 있습니다. 이런 실험을 모은 문헌고찰에서 눈에 남는 대목은 생리 지표 쪽입니다. 심박수와 젖산과 산소섭취량은 그대로였습니다. 움직인 값은 지각된 노력 하나였습니다 [2].

몸의 상태는 그대로인데 같은 페이스가 더 비싸게 느껴진다는 이야기입니다.

진료가 유난히 고됐던 날 저녁에 달리면 금방 지칩니다. 페이스는 평소와 같고 시계에 찍힌 심박도 비슷한데, 숨이 일찍 차고 끝까지 밀어붙일 마음이 먼저 사라집니다. 저는 오래 그 장면을 다리 탓으로 여겼습니다. 지금은 다르게 봅니다. 그날 무거워진 건 다리보다 감각 쪽이었을 겁니다.

힘든 순간에 쓸 말을 미리 정해 두면 달라질까요

동기부여 셀프토크를 2주 연습한 참가자들은 탈진까지 버틴 시간이 18% 늘었고 지각된 노력은 내려갔습니다 [3].

무작위로 배정해 비교한 시험입니다. 방법은 단순했습니다. 참가자들은 짧은 문장 몇 개를 미리 골라 두고, 두 주 동안 훈련하면서 힘든 구간마다 그 말을 꺼내 썼습니다 [3]. 거창한 구호는 없습니다. "느낌 좋다", "이 정도는 간다" 정도의 말입니다.

핵심은 미리 정해 두고 연습했다는 데 있습니다. 숨이 턱까지 찬 자리에서 문장을 새로 지어내기는 어렵습니다.

두 칸으로 나뉜 정보 카드. 왼쪽은 머리를 지치게 하면 심박·젖산·산소섭취는 그대로인데 지각된 노력이 올라가고 지구력 기록이 떨어진다는 내용, 오른쪽은 셀프토크를 2주 연습하면 탈진까지 버틴 시간이 18퍼센트 늘고 지각된 노력이 내려간다는 내용

감각을 건드리면 기록이 움직였습니다. Van Cutsem 등(2017)과 Blanchfield 등(2014)의 결과를 정리해 직접 작성한 카드입니다.

저는 그런 문장이 없던 사람입니다. 생긴 지도 얼마 안 됐습니다. 힘든 구간이 오면 수험생인 아들을 떠올립니다. 네가 버티면 나도 버틴다. 적어 놓고 보니 논리도 맞지 않습니다. 다른 부모들은 기운이 좋다는 산에도 가고 절에도 가고 기도도 한다는데, 저는 트랙에서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부끄러워할 것까지는 없겠다 싶습니다. 실험에서 고른 문장들도 별것 아니었으니까요. 걸린 문제는 말의 내용보다, 힘들 때 꺼낼 것이 이미 정해져 있느냐 쪽일 겁니다.

정신력으로 어디까지 밀어붙일 수 있을까요

정신적 피로 개입의 효과 크기는 중간 수준이고, 사람에 따른 편차가 큽니다 [4].

엘리트 선수에게도 같은 폭으로 나타나는지는 자료가 부족합니다 [4]. 뇌가 한계를 정하는 방식을 두고도 논쟁이 남아 있습니다. 의식적인 노력의 감각이 결정한다는 쪽과, 의식 아래의 보호 장치가 먼저 작동한다는 쪽으로 갈립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 적어 둔 문장이 있습니다. "Pain is inevitable. Suffering is optional." 혼자 달릴 때 저도 가끔 떠올립니다.

진료실에서는 이 말을 꺼내지 않습니다. 러너로서 스스로에게 하는 말과 의사로서 환자에게 하는 말은 같을 수 없으니까요. 한 지점의 통증이 달릴수록 뚜렷해지거나 심해진다면 거기서 멈춥니다. 숨이 차고 다리가 통째로 무거운 것과, 한 자리가 콕콕 쑤시는 것은 성격이 다른 신호입니다. 앞의 것은 뇌가 하는 예산 관리라 어느 정도 협상이 됩니다. 뒤의 것은 조직이 보내는 경고여서 협상 대상이 못 됩니다.

그럼 오늘부터 무엇을 해 볼까요

힘듦의 감각이 한계를 정한다면, 러너가 손댈 자리는 다리 말고도 있습니다. 네 가지로 정리했습니다.

  • 힘든 세션 앞에서는 머리도 아낍니다. 결정할 일을 잔뜩 남겨 둔 채 트랙에 나가면 같은 페이스가 더 비쌉니다 [2]. 대회 전날 늦게까지 이것저것 붙들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 꺼내 쓸 문장을 미리 정합니다. 두세 개면 충분합니다. 그 자리에서 지어내려 하면 늦습니다 [3].
  • 훈련일지에 그날 힘듦을 한 줄 남깁니다. 페이스와 심박 옆에 10점 만점으로 적어 두면 됩니다. 한계를 정하는 게 이 감각이라면, 페이스만큼 남겨 둘 값입니다.
  • 못 하겠다는 마음이 올라오면 한 번은 되물어 봅니다. 다리가 빈 것인지, 감각이 천장에 닿은 것인지. 다만 한 자리가 아프고 그 통증이 달릴수록 또렷해진다면 되묻지 않고 멈춥니다.

지난 트랙 세션에서 저는 2000m를 여섯 번 돌 계획으로 나갔다가 첫 번째 하나만 계획대로 끝냈습니다. 두 번째부터 1200m로 물러섰고, 마지막 하나는 800m에서 끝냈습니다. 못 하겠다는 마음이 처음 올라온 건 두 번째를 출발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남은 개수를 생각하면 다리가 비었을 리 없는 자리였죠. 다음에는 문장을 하나 정해 두고 나가 볼 생각입니다.

통증이 생기면

정신력으로 넘길 수 없는 통증이 있습니다. 정강이 안쪽을 따라 아프고 아픈 자리가 점점 좁아진다면 신스플린트와 피로골절의 구분을 먼저 읽어 보시고, 달린 뒤 발목이나 무릎이 아플 때 어느 시점에 진료가 필요한지도 따로 정리해 두었습니다. 저희는 직접 달리는 마취통증의학과(통증의학) 전문의가 러너의 통증을 진료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이런 점이 궁금합니다

마라톤 정신력은 훈련으로 좋아지나요

정신력이라는 말은 동기와 자신감과 감정 조절까지 넓게 걸치지만, 그중 실험으로 재고 다뤄 온 부분은 힘듦의 감각인 지각된 노력입니다. 짧은 문장을 미리 골라 두 주 동안 힘든 구간에서 쓰게 한 무작위 시험에서 탈진까지 버틴 시간이 늘고 지각된 노력은 내려갔습니다. 다만 정신적 피로가 지구력에 미치는 영향을 모은 문헌고찰에서 효과 크기는 중간 수준이었고 사람에 따른 편차가 컸습니다. 감각을 건드리는 개입이 누구에게나 같은 폭으로 나타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지각된 노력(RPE)이 무엇인가요

지각된 노력은 지금 하고 있는 운동이 얼마나 힘들게 느껴지는지를 본인이 매기는 값입니다. 심박수나 젖산 같은 생리 지표와 따로 움직일 때가 있어서, 몸의 상태는 그대로인데 같은 페이스가 더 비싸게 느껴지는 날이 생깁니다. 지구력의 한계를 근육이 비는 지점보다 이 감각이 자기 최대치에 닿는 지점에서 찾는 연구들이 있습니다.

러닝 셀프토크는 어떻게 하나요

연구에서 쓴 방법은 단순합니다. 짧은 문장 몇 개를 미리 고른 뒤 훈련 중 힘든 구간에서 반복해 써 보는 것이었습니다. 거창한 구호는 없었고 느낌 좋다, 이 정도는 간다 정도의 말이었습니다. 숨이 턱까지 찬 자리에서 즉석으로 만들어 내기는 어려우니 미리 정해 두고 평소 훈련에서 연습해 두는 편이 낫습니다.

힘들어도 참고 계속 달려야 하나요

숨이 차고 다리 전체가 무거운 느낌은 몸이 힘을 배분하는 과정에 가까워서 어느 정도 밀어붙일 여지가 있습니다. 반면 한 지점이 콕콕 아프고 그 통증이 달릴수록 뚜렷해지거나 심해진다면 조직이 보내는 경고이므로 그날은 거기서 멈추는 편이 안전합니다. 통증이 며칠 이어지거나 걷기에도 지장이 있다면 진료를 받아 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참고문헌

  1. [1]Marcora SM, Staiano W. The limit to exercise tolerance in humans: mind over muscle? European Journal of Applied Physiology. 2010;109(4):763-770. doi:10.1007/s00421-010-1418-6 PMID: 20221773. https://pubmed.ncbi.nlm.nih.gov/20221773/
  2. [2]Van Cutsem J, Marcora S, De Pauw K, Bailey S, Meeusen R, Roelands B. The effects of mental fatigue on physical performance: a systematic review. Sports Medicine. 2017;47(8):1569-1588. doi:10.1007/s40279-016-0672-0 PMID: 28044281. https://pubmed.ncbi.nlm.nih.gov/28044281/
  3. [3]Blanchfield AW, Hardy J, De Morree HM, Staiano W, Marcora SM. Talking yourself out of exhaustion: the effects of self-talk on endurance performance. Medicine & Science in Sports & Exercise. 2014;46(5):998-1007. doi:10.1249/MSS.0000000000000184 PMID: 24121242. https://pubmed.ncbi.nlm.nih.gov/24121242/
  4. [4]Habay J, Uylenbroeck R, Van Droogenbroeck R, De Wachter J, Proost M, Tassignon B, et al. Interindividual variability in mental fatigue-related impairments in endurance performance: a systematic review and multiple meta-regression. Sports Medicine - Open. 2023;9(1):14. doi:10.1186/s40798-023-00559-7 PMID: 36808018. https://pubmed.ncbi.nlm.nih.gov/36808018/

이 글은 러닝 훈련과 과학에 관한 일반 정보이며 개인별 진단·처방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통증이 있다면 진료 상담을 받아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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